서울시가 주민 동의를 기준으로 구역 해제 여부를 결정하는 ‘뉴타운 출구전략’을 발표한 이후 부동산시장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사업 진행 속도에 따라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 간 ‘미래 희소성’을 두고 평가가 다르다. 같은 지역에서도 소유 지분의 크기, 투자시점, 건축물의 종류에 따라 손익 계산이 엇갈린다. 뉴타운과 주변지역 사이에서도 명암(明暗)이 나뉜다.
서울시는 지난달 실태조사를 거쳐 재개발이 불필요하거나 주민 반대가 심한 곳은 정비사업을 철회하도록 했다. 시는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은 곳은 토지 소유자 등 주민 30% 이상이 반대하면 구역 지정을 해제하고, 추진위가 구성된 지구는 토지 등 소유자의 10~25% 이상이 반대하면 실태조사를 벌여 구역 해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단독·다가구 ‘웃고’, 다세대·연립 ‘울고’
뉴타운 내 재개발구역에서 가장 반대가 심한 주민들이 상가 소유자와 대형 단독·다가구주택 소유자라는 사실은 공통사항이다.
그동안 뉴타운에서는 지분면적 20㎡ 안팎의 소형 지분이 상대적으로 면적이 큰 지분보다 많게는 두 배 이상 비싼 시세를 형성했다. 재개발 사업에선 지분 크기나 감정가와 상관없이 지분 하나당 새 아파트 혹은 상가를 한 채만 배정받는다. 소형 지분의 경우 적은 돈을 투자해 입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단위면적당 가격이 높았던 것이다.
단독주택이나 상가주택의 경우 투자금액이 많이 들어가는 데다 나중에 아파트 하나만 달랑 받을 수 있어 인기가 없었다.
실제 창신·숭인뉴타운에서는 동대문상가와 가까운 상업지나 대로변 소형 지분(20㎡)이 3.3㎡당 4000만원을 웃돌기도 한다. 반면 숭인1동 산비탈에 위치한 165㎡ 단독주택은 3.3㎡당 1400만원에 그친다. 평균 시세는 대형 지분이 3.3㎡당 1700만~1800만원, 소형은 2000만원을 형성했다.
마포 아현뉴타운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26㎡짜리는 3억원(3.3㎡당 3750만원), 66㎡는 4억원(3.3㎡당 2000만원)의 시세를 나타내 소형 지분의 인기가 확연히 높았다.
그러나 뉴타운에서 해제되는 곳에선 이런 현상이 사리질 전망이다. 대형 단독주택의 경우 요즘 인기가 좋은 도시형생활주택을 지을 수 있다. 다가구주택 소유자나 상가주택 소유자는 지금처럼 안정적인 월세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이에 반해 소형 다세대주택은 아파트화가 불가능해지면서 노후될수록 가격이 하락하는 게 불가피해졌다. 구역 해제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종로 창신·숭인뉴타운의 서윤호 충남공인 대표는 “재개발지역에선 단독주택이나 상가주택 소유자들이 개발을 반대하고 다세대주택 소유자들은 개발에 적극 찬성해왔다”며 “대지가 큰 단독주택이나 다가구 등은 가격이 오르겠지만 작은 지분이나 연립주택은 메리트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창신·숭인지구는 동대문시장과 가까워 새벽장사를 하는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한 월세 수요가 많은 곳이다. 서 대표는 “한 달에 수백만원씩 월세로 생활비를 버는 집주인들이 많다”며 “지하에는 공장을, 지상 1~4층에는 다가구로 세를 놔 한 달에만 2000만~3000만원을 벌어들이는 이들이 더러 있다”고 전했다.
◆투자시점·사업속도 따라 울상
부동산 전문가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뉴타운 붐’을 타고 투자했고 대출까지 끼고 있다면 손해가 적어도 1억원은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상당수 뉴타운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분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진 탓이다. 그동안 은행에 낸 금융비용도 만만치 않다.
창신·숭인뉴타운의 W부동산 관계자는 “창신9, 10구역 성곽을 따라가는 고지대에서는 몇 년전 기획부동산이 오래된 한옥을 허물고 대지 지분을 20㎡ 이하로 쪼개 연립·다세대주택을 분양했다”며 “3.3㎡당 4000만~5000만원을 주고 막차를 탄 투자자들은 손해가 클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구별 사업 속도에 따라 미래 가치도 달라진다. 실태조사 대상인 사업시행인가 이전 단계의 구역들이 많으면 뉴타운 해제 가능성이 높아 그만큼 투자가치가 떨어진다.
반면 구조조정 대상이 적고 사업계획이 확정적이면 오히려 정책 불확실성이 제거된 영향으로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아파트로 변신할 수 있는 지역이 대폭 줄어들면서 희소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셈이다. 북아현·아현·신정 뉴타운 등이 대표적인 수혜지역으로 꼽힌다.
뉴타운지역 내 건물 신·증축이 제한되면서 상대적으로 인기를 누렸던 뉴타운 주변지역 땅값도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이들 지역에선 그동안 뉴타운 이주 수요를 겨냥한 다세대 신축이 많았다.
다만 현재로선 급매물이 많지 않다고 현지 중개업소들은 전한다. 아직 해제 여부가 불투명한 데다 지분 소유자들이 투자금액과 시세를 감안해 과도하게 낮은 가격에서는 매물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일단 뉴타운 해제 지역이 나오면 그동안 참았던 매물들이 대거 나올 것”이라며 “도시형생활주택이나 원룸도 공급이 초과된 지역이 적지 않기 때문에 실수요가 풍부한지 파악하고 투자지역을 골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구역 해제 지역의 땅을 사들여 건축을 할 계획이라면 대학가나 오피스단지와 근접해 임대 수요가 풍부한 곳, 월세 대신 전세를 받아서라도 건축비를 감당할 수 있는 곳, 외국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영업이 가능한 곳 등이 좋다”고 덧붙였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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