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올바른 부동산 정책의 조건

김기영이사 2011. 8. 1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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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내내 부동산은 우리 사회에서 최대의 화두였다. 2002-06년에는 투기 광풍 때문에 그랬고, 2008년에는 미국 부동산 가격의 폭락으로 인한 세계적 금융위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이후에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인한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그랬다. 정부는 쉴 새 없이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고, 학자·언론·시민단체는 각자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히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 부를만한 상황이었다.

 

일반 국민들은 다양한 정책 대안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어떤 정책이 우리 사회의 부동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지 헤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독자들 중에는 부동산 문제에 관한 TV 토론을 시청하면서 한쪽 패널의 말을 들으면 그것이 맞는 것 같고, 반대쪽 패널의 말을 들으면 또 그것이 맞는 것 같아서 헷갈린 경험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과연 부동산 정책에 정답은 존재할까?’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을 것이다.

 

필자는 부동산 정책이 의사가 내리는 처방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의사 중에는 병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는 처방을 내리는 양심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증상만 다루다가 나중에 병을 더 악화시키고 마는 처방을 내리는 사람도 있다. 개중에는 근본 원인 자체를 잘못 진단하는 돌팔이 의사도 있다. 양심적인 의사 중에는 근본 원인을 다루면서 증상까지 완화하는 실력을 갖춘 사람도 있고, 그런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도 있다. 후자는 좋은 의사이기는 하지만, 환자의 불평과 원망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좋은 정책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정책이다. 근본 원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현안만 붙들고 씨름하거나 근본 원인을 오인해서 나오는 정책은 나쁜 정책이다. 한편 좋은 정책 중에는 근본 원인을 다루면서 문제가 되는 현상을 완화하는 정책이 있는가 하면, 근본 원인에만 집착하다가 문제가 되는 현상을 신속하게 완화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악화시키는 정책도 있다. 후자는 좋은 정책이기는 하지만, 쏟아지는 비판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

 

근본 원인을 제대로 다루면서도 문제가 되는 현상을 완화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면 최상의 정책이라 할 수 있겠는데, 어떤 부동산 정책이 여기에 해당할까? 최상의 부동산 정책이 갖춰야 할 조건을 제시해보기로 하자.

 

첫째, 올바른 정책 철학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올바른 철학을 갖추지 못한 정책은 마치 갈 곳을 잃은 채 표류하는 배처럼, 그때그때 문제가 되는 현상에만 집착하는 대증 요법이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정책 철학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엉터리라면 마치 엉뚱한 곳을 향해 가면서 목표 지점에서 멀어져 버리는 배처럼, 정책이 오히려 더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올바른 정책 철학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헨리 조지(Henry George, 19세기 후반 미국의 경제학자로서 토지공개념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경제법칙과 도덕법칙에 동시에 부합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고, 현대 경제학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효율성과 공평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친화적인 방식으로 평등지권(平等地權,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을 구현하는 부동산 정책이 바로 그런 정책이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혹은 지공주의(地公主義)이라고 불리는 이 정책 철학의 핵심 내용은, 토지와 자연자원이 모든 사람의 공공재산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는 만큼 그것을 보유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토지가치에 비례해 사용료를 공공에 납부하게 하고 사용료 수입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올바른 정책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장기정책 수단을 갖추어야 한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그리고 시장 상황이 변한다고 해서 변경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장기 정책이다. 정권을 잡았다고 장기정책을 마음대로 변경하면, 정책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렸다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구현할 수 있는 장기정책으로는 토지가치세제와 토지공공임대제를 들 수 있다. 토지가치세제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 소득을 가능한 한 많이 조세로 환수하는 제도이고, 토지공공임대제는 국공유지를 많이 확보해서 임대 방식으로 관리하는 제도이다(두 제도는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핀란드, 스웨덴 등 다수의 모범적인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시행되어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자).

 

이 두 제도는 단기간에 완전한 형태로 도입하려고 할 경우에는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하기 때문에 시간을 길게 잡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두 제도는 도입되더라도 당장 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폭락, 불로소득의 발생 등)을 완화하는 데는 그다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기 쉽다. 부동산 가격의 변동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단기정책이 필요하며, 장기정책이 완성되기까지는 곳곳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기 위해서는 개발이익환수 제도나 양도소득세 제도가 필요하다.

 

셋째, 당장 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단기정책 수단을 갖춰야 한다. 단기정책은 정책 철학의 구현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은 아니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단기정책이 실시되지 않을 경우, 사회적 반발이 증폭되고 정치적 위기가 초래되어 장기정책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기 쉽다. 부동산 시장에서 단기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가격의 폭등과 폭락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도, 폭락할 때도 사회 구성원들은 큰 고통을 호소하며 정부의 대책을 요구한다. 우리나라처럼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곳에서는 가격 변화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특히 민감하다. 토지가치세제와 토지공공임대제 같은 장기정책도 가격 변동의 진폭을 완화하는 효과를 발휘하기는 하지만, 당장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동성이 부동산 가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가격 변동의 진폭을 줄이는 효과가 가장 확실한 정책은 미시적 금융정책이다. 미시적 금융정책이란 시장이 과열될 때는 부동산 대출규제를 강화하고 시장이 침체할 때는 부동산 대출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가리킨다. 그와 함께 단기 가격 조절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책으로는 전매제한과 같은 거래규제, 분양가상한제와 같은 가격규제, 재건축규제와 같은 개발규제 등이 있다. 장기정책과 함께 금융규제·거래규제·가격규제·개발규제 등을 적절히 강화 혹은 완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면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폭락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런 규제정책들을 장기정책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직접규제는 단기적 효과가 확실한 반면 장기화할 경우 시장을 왜곡시키고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분양가상한제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을 때 실시하면 분양가 상승이 기존 주택 가격의 상승을 유발하는 현상을 차단하여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발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규 주택의 공급을 감소시켜서 장기적으로 가격 상승 압력을 가중시키고 주택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넷째, 아무리 훌륭한 장단기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들을 지원하는 복지 정책을 마련해서 장단기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 복지정책을 펼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재원 확보 문제인데, 주거복지 정책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복지정책과는 달리 주거복지 정책의 경우, 토지가치세제와 토지공공임대제가 시행되면 자동적으로 재원이 확보된다는 이점이 있다. 그 외에도 양도소득세나 개발이익환수제도를 통해 환수하는 토지 불로소득 환수액도 주거복지를 위한 재원에 더해질 수 있다.

 

물론 토지보유세 수입과 공공토지 임대료 수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어떤 방법을 선택하건 주거복지는 제 일순위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주거 서비스가 인간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필수재일 뿐만 아니라, 토지보유세 수입과 공공토지 임대료 수입을 주거복지를 위해 지출하는 것은 토지권(土地權)을 많이 누리는 사람들에게서 대가를 걷어서 그 수입을 토지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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